지금부터 할 얘기는 개인적인 경험담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론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이 글 속에서나마 조금 맛보시라고 올립니다
(사실 며칠전에 썼던 얘긴데 이곳에서 여러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옮겨놓습니다)
2년쯤 기름바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간동안 섬 빼고 전국 대부분의 지역을 돌았던 것 같습니다
전국 어디에도 주유소는 있으니까
그렇게 다닌 덕분에 기름 바닥 생리는 나름 안다고 생각합니다
복수폴사인제를 시행한다죠?
(복수폴사인 : SK폴을 달고 있는 주유소에서 다른 정유사의 기름을 함께 팔 수 있는 제도)
젠장, 뭐 새로운 것 하는 것마냥 호들갑이군요
예전에도 있었던 제도입니다
그동안 실천이 불가능했었을 뿐이죠
왜냐, 정유사들이 자기네 간판을 달고 있는 주유소에서 남의 기름을 파는 꼴을 못보겠다 이것 때문이었죠
사실 정유사는 기름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포스(POS)나 간판, 포인트카드 제도, 메뉴얼화된 서비스, 각종 시스템 등 많은 것을 함께 제공합니다
이것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기름가격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복수폴을 하겠다고 나선 주유소한테, 복수폴? 그래 맘대로 해라, 그 대신 니들이 복수폴 하면 우리 간판은 떼어갈거다, 물론 다른 편의제공도 몽땅, 이러는 바람에 시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거 아니냐,고 항의해봤자 소용없는 것이,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계약조건이 맘에 안들어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건데 무슨 공정거래법이냐고 맞서면 할 말이 없습니다
여튼 그동안은 이런 사정으로 못했던 것을 이제 본격 추진한다니, 더구나 국민이 아닌 기업을, 정부의 밀어부치기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복수폴사인제를 시행하면 정유사들은 나쁠까요?
네, 안 좋습니다
기존 자기네 폴을 달고 있는 주유소가 다른 정유사에 눈길을 돌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테니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가격할인입니다, 주유소에 파는 가격을 낮춰주는 거죠
그러면 정유사 입장에선 마진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주유소들도 그렇게 싸게 받으면 그만큼 소비자판매가격을 내려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매출을 늘리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 다른 주유소들도 자기네 정유사에 강력 항의하겠죠
누구는 얼마 싸게 받아서 값을 내려 손님을 다끌어가는데 니들은 뭐냐, 나도 그 정유사에서 받을 거다, 이러면 울며 가져먹기로 그 정유사도 값을 내려 공급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이를 바이어 마켓(buyer market)이라고 합니다
사는 놈 목소리가 커지는 거죠
2000년쯤부터 한 3년 동안도 기름시장은 이런 바이어 마켓이었습니다
그때는 석유제품 수입사가 값을 내리는 역할을 해줬었죠
타이거오일주유소 기억하세요? 충남권엔 바울주유소, 또 유명한 데가 뭐가 있더라
여튼 그양반들이 동남아나 중국 등에서 싼 값에 휘발유, 경유를 사와 기존 SK LG 등 폴을 달고 있는 주유소에까지 몰래몰래 파는 바람에 정유사들이 자사폴 주유소를 잡느라 값을 내려주는 바이어 마켓이었죠
그러나 정유사들이 힘을 합쳐 묘한 방법으로 수입사들을 다 밀어내고, 또 일부에선 돈 들고 도망가고, 부도내고 이러는 바람에 수입사들은 궤멸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이후론 철저하게 셀러 마켓(seller market)이 됐죠
주유소들은 정유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됐어요
여튼 과거사를 얘기하니까 길어지는 군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바이어 마켓이 되면 정유사끼리도 경쟁이 심해지고 주유소끼리도 경쟁이 심해집니다
경쟁은 대부분 가격할인으로 합니다
정유사 영업사원이 주유소를 돌아다니며 영업을 하는데 이들의 공급가격결정권은 리터당 5~10원 정도, 이들이 못내는 가격은 그들을 관리하는 본부장이 하는데 여기서 네고해줄 수 있는 가격도 10원 정도? 그 이상은 본사의 컨펌을 받아야 합니다
러터당 10원이면 얼마 안되는데...라고 생각하시겠죠?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커다란 탱크로리 차량을 본적 있나요?
그차의 용량이 100드럼, 그러니까 2만리터입니다
10원의 가격차이는 그 한차 어치를 팔았을 때 20만원이 되겠죠?
전국 주유소의 월평균 판매량이 약 1000드럼이니까 한달이면 200만원이 되겠군요
정유사로부터 리터당 10원만 싸게 받을 수 있다면 한달에 200만원이 떨어지는 겁니다
200만원이면 아르바이트생 4명을 하루 중 가장 바쁜 4시간 동안 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주유소에서 알바 한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서비스의 질이 올라간다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알바 대신 손님에게 휴지 하나씩 더 줄 수도 있고, 돈을 조금 더 보태 무료세차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리터당 10원 남긴 중에서 5~7원쯤 깎아 가격에 민감한 인근 주유소의 손님을 끌어올 수도 있습니다
주유소 입장에선 엄청난 돈이죠
전국 주유소의 평균은 1000드럼이지만 사실 서울과 수도권만 놓고 보면 이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그런데 본격 경쟁이 붙으면 그 가격 단위는 10원으로 그치지는 않을 겁니다
예전에 전국 주요 도시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공급가격이 리터당 얼마나 차이면 불이익을 감수하고 몰래 다른 정유사의 기름을 쓰겠냐? 물었더니
리터당 30원 정도입디다
물론 100원 차이가 나도 안바꾼다는 대답도 있었지만 그게 입발린 소리란 건 너무나 잘 압니다
더구나 예전엔 정유사 몰래 새벽에 들여오고 했지만 복수폴 전격 시작되면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본격 경쟁이 붙이면 시장이 요동치겠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본론입니다ㅋㅋ 이제서야 본론이라니,
현재 기름시장의 70%(확실치 않습니다. 대충 감으로 때려잡아서)는 SK와 GS가 점유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를 S-Oil과 현대오일뱅크가 갖고 있죠 (SK인천정유는 SK 집안)
가격경쟁이 벌어지면 SK와 GS가 유리할까요, S-OIL과 현대오일뱅크가 유리할까요?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듯 SK GS는 방어해야 하고 S-Oil과 오일뱅크는 공격자의 입장이 될 겁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S-Oil과 현대오일뱅크는 가격할인 전략으로 선두회사를 공략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방에서의 가격경쟁은 불을 뿜죠
이번 복수폴사인제로 S-Oil과 현대는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나름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물론 가격인하라는 출혈경쟁을 해야 합니다
SK나 GS보다 돈이 많지 않은 정유사가 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영업현장에선 하기 싫다고 안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정부가 뒤에서 싸움을 부추기는 형국이잖습니까?
그런데, SK나 GS가 원유를 사오는 가격과 S-OIL이 들여오는 가격 중 누가 더 쌀까요?
S-OIL입니다
최근까지 S-OIL의 대주주가 사우디의 아람코였죠
기름 파서 수출하는 곳에서 사오는데 당연히 쌀 수밖에요
그래서 국내에서 가장 싸게 팔 수 있었던 거구요
대주주 지분이 넘어간 상황에서도 계속 싸게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한동안은 가능할 겁니다
지분 넘겨받을 때 그 정도 계약조항은 넣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상상합니다
드디어 결론입니다
다 나왔죠?
복수폴사인제는 정유사들의 가격경쟁을 불러일으켜 정유사의 마진을 악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약자에겐 출혈경쟁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그러니 정유 4사를 똑같이 놓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참고로, 과거 석유수입사들이 활개 칠 때 그들의 시장점유율은 10%가 살짝 넘었습니다. 5개 정유사를 상대로 10%!!!)
* 기름 값 비싸면 주유소를 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유소는 정유사의 1차 고객일 뿐입니다
정유사에서 들여온 가격에 엄청난 마진을 붙여 판다면 모를까, 그들이 기름값 높아서 얻는 이익은 없습니다.
엄청난 마진을 붙이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인근 싼 주유소와 비교되기 때문에
거꾸로 리터당 같은 액수의 마진을 유지하며 같은 양을 팔아도 매출액은 올라가기 때문에 신용카드 수수료나 세금만 늘어나 순익이 줄어들죠
** S-OiL이 SK에 한참 뒤쳐지는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카드마케팅입니다
SK의 OK캐시백은 일반인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엄청나게 큰 파워를 지녔습니다
'Stock'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필드 지분공시 (0) | 2008.07.10 |
---|---|
"하반기 정제마진 조정..높은 수준 유지"-NH (0) | 2008.07.02 |
케이디씨 "텔슨과 합병계획 없다" (0) | 2008.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