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VALUE INVESTMENT)는 언제부터 우리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을까여?

 

저는 교조적 펀더멘탈리즘을 싫어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전 모든 형태의 교조주의를 싫어합니다.

교조주의자들은 현실 그 자체를 보지 못하고 텍스트로 현실을 가공하려 듭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사상이나 철학은 인생과도 같이 그 수명이 있습니다.

교조적 사상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다양한 패러다임의 한 형태일 뿐 영원불멸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어떠한 패러다임은 역사를 통해 재답습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모두 통한다는 주장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회현상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교조주의는 인간의 인식 형태입니다. 인간의 인식과 행동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떠한 사상이 옳아서 현실에 적용된다기 보다는 그러한 사상의 추종자가 많기 때문에 그 사상이 현실 속에 실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이번 글에서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가치투자자의 가장 강력한 지표 중 하나인 저PER과 저PBR이 어떻게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 전파되고 정착되었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는지입니다.

 

4-1. 외국인의 등장과 내재가치 혁명

 

1992년 한국 증시는 외국인에게 장내 주식 매입을 허용합니다. 이를 증시 개방이 라고 합니다. 증시는 3저 호황의 붕괴로 초토화되어 있던 터라 증시 부양을 위해 외국계 자본을 끌어와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면개방을 한 것은 아니고 종목 당 발행주식의 10% 한도 내에서 외국인의 매입을 허용했습니다. 드디어 오늘날 우리 증시의 3대 투자주체의 하나인 외국인이 무대에 등장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증시를 선도하는 주도세력이 개편됩니다.

 

아시다시피 외국인이 우리 증시에 들어오기 전에 국내 투자자 사이에서는 체계화된 투자의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개투들은 물론이고 기관투자자들 또한 정보 매매와 작전성 투기 등에 몸담았을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으로 증시 개방이 되기 이전에는 주식의 내재가치(INTRINSIC VALUE)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모든 종목은 그 종목이 속한 업종을 따라 동조화되어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고 그에 따라 테마장세와 같은 건설주 장세과 트로이카 장세 등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외국인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선진 투자기법을 이머징 마켓에서 적용하고자 한 것입니다.

PER은 192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생겨났습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PER(Price-Earning Ratio)란 기업의 수익가치에 비해 주가가 얼마만큼 평가받고 있느냐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1년에 100억의 순이익을 내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1000억이라면 PER은 10이 되는 식이지여. 또 달리 표현하자면 PER이 10이라는 것은 이 기업을 인수하여 본전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대략 10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미국에서 PER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이며 1960년대에는 유럽으로도 보급되었고 급기야는 일본 시장에서도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우리 시장에 처음 들어오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PER이 형편없이 낮은 기업들이 수두룩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러한 저PER주가 왜 그토록 우리 시장에 범람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의 가치는 크게 보면 보유가치투기가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유가치란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주식의 가치를 말하며 투기가치란 주식의 잠재적인 시세변동을 통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가치입니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보유가치 속에는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주로 대주주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주주총회에서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까지 대부분의 주식은 가장 큰 지분을 확보한 대주주가 주인이었고 이들은 평소에는 지분을 보유가치의 측면에서 가지고 있다가 돈이 필요할 때쯤 되면 증권사 세력과 담합하여 주가를 올려 지분의 일부를 매각했다가 폭락시켜 되사는 식의 투기용도로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주가는 해당 기업의 가치를 반영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증시 개방 전의 우리 증시는 후진 증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대자본을 끌고 우리 증시로 상륙한 외국인들은 10% 보유한도에 대한 규정만 없었다면 싸고 좋은 기업을 통째로 인수해버릴 기세로 덤벼들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열심히 기업 탐방을 다니면서 '저평가주'를 수색해냈고 증시 개방 첫날부터 막대한 자금을 증시에 퍼부으면서 만년 소외주들을 줄상한가로 밀어올려갔습니다. 우리 증시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기존 증시를 주무르던 기득권 세력판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불었습니다.

 

실제로 1992년도 상반기 KOSPI 지수는 약세흐름을 이어갔으나 외국인들의 매기가 붙은 종목은 상한가를 내달리는 모습을 연출하여 개투들을 경악시켰습니다.

 

저PER 종목들이 외인들의 매수세로 대폭발했던 이 시기를 PER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PER주 장세의 중심에는 태광산업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태광산업이 얼마나 강하게 분출했는지를 살펴봅니다.

저점 43900원에서부터 2년 동안 54만원까지 10배 폭등하는 대시세를 연출했습니다.

이 시세의 특징적인 부분은 또한 2차례에 걸쳐 시세가 분출했다는 것인데, 20주 이평선을 붕괴한 후에 60주 이평선의 지지를 받고 2차 시세를 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태광산업 외에 저PER혁명에 동참했던 종목들로는 한국이동통신, 백양, 대한화섬 등이 있습니다.

 

1993년 하반기에는 '자산주 열풍'이 일어납니다. PER이 투자자의 관심을 끌자 곧이어 저PBR주에 대한 관심이 시장을 달구었던 것입니다. PBR(Price-Book value Ratio)은 어떠한 주식의 순자산 대비 주가가 얼마나 평가받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이때 순자산에 포함되는 항목으로는 대개 회사 소유의 부동산, 현금 등이 있는데 이러한 순자산을 모두 합한 가치보다 시가총액이 작을 때 PBR은 1 이하가 되며 청산가치 대비 저평가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시가총액이 1000억인 어떤 기업의 땅과 부동산 가치가 2000억이라면 누군가 이 기업을 1000억에 인수하여 2000억이 팔아버리면 1000억의 차익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자산주 열풍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먼저 저PER혁명으로 인한 내재가치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관심이 고조된 상태에서 10% 이내의 지분보유제한을 명시하는 증권거래법 200조가 폐지될 것이라는 풍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대자본을 소유한 외국인들이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종목들에 대한 적대적 M&A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주주들의 지분방어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 주가는 당연히 청산가치에 이를 때까지 폭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산주 열풍의 선도주는 성창기업과 만호제강이었습니다. 이 두 중목은 사상 유례 없는 연속 상한가 기록의 보유자입니다.

만호제강은 23일 연속 상한가 기록을 가지고 있고 성창기업은 2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만호제강>

전고점으로 이루어진 저항을 돌파 후 조정도 없이 수직급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세가 폭발하는 동안 단 한번도 5주 이평선을 뚫고 내려간 적이 없었음에 주목하시길.

 

<성창기업>

성 창기업의 차트는 조금 더 재미있지여. 93년 중반에 전고점을 뚫고 올라간 시세는 지지선으로 전환된 전고점 부근까지 되돌림이 발생하였으나 지지받고 신고가를 재경신, 폭발적 시세를 분출했습니다. 이 경우는 5주 이평선과 닿지도 않고 날아가는 수퍼 스탁(SUPER STOCK, 김종철 소장이 이러한 특징을 가진 종목에 붙인 별명)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산주 열풍을 종식시킨 것은 결국 11월 22일 국회가 증권거래법 200조를 폐지는 하되 그 시행시기를 1997년 4월 1일로 유보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적대적 M&A의 발생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자산주들은 꼭지를 칩니다. 쌩쇼를 한 셈이 된 것이죠.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만호제강과 성창기업은 부산에 적을 두고 있는 회사로 이들의 자산가치 저평가를 발견하고 매집했던 세력은 부산지역에 있었던 회계사 그룹이었습니다.

 

4-2. 내재가치 혁명이 시장에 남긴 것

 

비록 내재가치 혁명이 우리 자신이 아닌 외국인들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이는 분명 우리 시장에 가치투자의 문화내재가치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깨닫는 거지만 대학생이었던 제가 가치투자라는 선진기법에 매혹되어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추앙했던 것도 알게 모르게 내재가치 혁명이 이루어높은 투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여.

 

내재가치는 분명 주식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조주의로 흐르게 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장은 예전과는 달리 고도의 정보 효율성을 달성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주식들은 내재가치를 따라 움직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내재가치 혁명이 남긴 긍정적 유산이라면 유산일까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증시 개방이 되기 이전처럼 저PER주와 저PBR주에 투자하는 것만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이미 주가는 이러한 것을 반영하여 대부분 올라버렸기 때문이지여.

 

가치투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PER, PBR은 가장 기초적인 가치지표이며 성장주에 한해서는 PSR은 살펴보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PER보다는 EV/EBITDA를 더 중요시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 듯 한데, 앞으로 또 어떤 유행이 불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모든 가치투자 기법의 밑바탕에는 동일한 철학, 즉, '모든 주식은 결국 제 가치를 인정받는다'라는 대전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대전제는 수학으로 치면 공리(AXIOM)와도 같습니다. 증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만 잘 알고 가치투자를 행한다면 적어도 편협한 교조주의자로 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추세추종철학의 대전제는 무엇일까요?

추세추종철학 또한 아주 단순명료한 대전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시장에는 언제나 주기적으로 추세가 발생한다'라는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추세장은 여러가지 이유로 나타납니다. 달리 말하면 버블은 여러가지 이유로 생겨납니다.

그 이유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때는 PER이 낮다고 올라가고, 어떨 때는 높다고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어떨 때는 강력한 정부 육성 산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올라가고, 어떨 때는 적대적 M&A의 가능성 때문에 올라갑니다. 어떨 때는 국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내수경기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올라가고 어떨 때는 대외적인 기술 버블에 동참하여 올라가기도 합니다. 2007년의 버블에서는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이라는 테마가 존재했지여. 중국 관련주가 이 당시 얼마나 크게 폭등했는지는 직접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각각의 버블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촉발되고 강화되지만 그 패러다임이 수명을 다하게 되면 한동안 시장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시장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과거에 성공했던 패러다임과 전략, 그리고 무기를 맹신하게 되면 늘 뒷북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기법 또한 부정합니다. 모든 기법은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특정한 패러다임에서 생겨나는데, 상부구조인 패러다임 조차 유한하거늘 기법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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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분이 제 프로필 사진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해주셨네여.

인기글로 선정되고 많은 사람들이 읽는데 제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여.. 프로필 사진을 바꿉니다.

요즘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손담비 양입니다. (^o^)/

만일 이 프로필 사진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여.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여? ㅎ

 

저번 글에서 증시 개방과 함께 일어났던 내재가치 혁명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당시의 대세상승장을 살펴보면서 이에 우라카미 쿠니오의 장세사이클 구분법을 적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그래도 한번 복습해보지여.

 

우라카미 쿠니오에 의하면 주가에도 4계절이 있습니다. 그는 각각을 금융장세, 실적장세, 역금융장세, 그리고 역실적장세로 구분하였습니다.

 

사이클은 경기가 심각하게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경기가 침체되어 있을 때는 투자와 소비가 모두 심각하게 위축이 되고 돈을 빌리려는 사람보다 갚으려는 사람이 많아져(이를 식자들은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라고 하지여) 유동성이 크게 감소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반적인 자산가격의 디플레이션이 일어나게 되고 이로 인한 역 부의 효과가 발생하여 소비는 더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해 나서게 되는데 크게 금융정책재정정책의 측면에서 접근을 하게 됩니다. 이중 먼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금융정책인데 이는 주로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조작(OPEN MARKET OPERATIONS)이나 법정지급준비율(RESERVE REQUIREMENTS) 인하, 그리고 재할인율(DISCOUNT RATE) 인하 등의 방식으로 통화량을 증대시킵니다. 결국 통화량이 증가하면 금리가 떨어지게 되고 고금리 메리트로 채권이나 예금에 몰려 있던 자금들은 서서히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경기는 여전히 침체되어 있지만 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경기회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증시가 상승하는 국면이 오게 되는데 이를 금융장세라고 합니다. 금융장세는 다른 이름으로 유동성 장세라고도 합니다.

 

주가가 어느 정도 부양이 되고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면 산업자본들은 저금리의 메리트에 의해 위축되었던 투자심리를 회복하게 되고 이에 따라 설비 투자 증가, 고용 증가 등이 일어나면서 자금 수요가 조금씩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면 금리는 바닥을 치고 서서히 오르게 되지여. 고용이 증가하게 되면 소비가 뒤따라 증가하게 되고 그러면 기업의 매출이 증가하는데 이에 반해 여전히 금융비용이 낮게 유지되기 때문에 기업의 실적은 호전됩니다. 그러면 주가는 이러한 펀더멘털 요인을 바탕으로 상승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이러한 국면을 실적장세라고 합니다.

 

기업들의 실적이 하나둘 호전되고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투자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자금의 수요는 계속 증대되므로 금리는 계속 상승하기 시작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높아진 금융비용이 실적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가는 천정을 치고 하락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를 역금융장세라고 합니다.

 

실적의 악화를 감지한 산업자본들은 서서히 투자를 줄이기 시작하고 이는 소비의 감소로 일어나면서 금리는 정점을 지나 하락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기업간 경쟁 및 높은 금융비용에 의해 실적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주가는 더 하락하는 국면이 나타납니다. 이를 역실적장세라고 합니다.

 

우라카미 구니오의 이론은 금리실적이 라는 두 가지 변수와 주가와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꽤 유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교조주의적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한데 특히나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제에서는 환율, 원자재 가격 동향, 유가 동향 등의 여러가지 추가적 변수가 기업의 실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론은 외부적 변수가 대체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 가장 잘 들어맞는 하나의 모델로써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5. 신3저와 반도체 특수, 그리고 블루칩 장세

 

먼저 큰 그림을 보기 위해 이 당시의 차트를 우라카미 쿠니오의 4국면으로 나타낸 뒤 각 시기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89년 1015포인트를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증시는 자그만치 4년 가까이 하락장을 지속하 며 급기야는 1992년 8월 456포인트를 찍게 됩니다. 제가 이 당시에 주식판에 없었기에 다행입니다. 주가지수 선물시장은 1996년 5월 5일까지는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락에 베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 이 당시에는 현물 밖에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바닥을 모르고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는 증시 속에서 4년 내내 고군분투한 개미가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쪽박을 차고도 거덜나 서울역 앞으로 나앉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강한 추세가 이처럼 잔인할 수도 있음을 역사로부터 반드시 배우시길 바랍니다.

 

증시의 역사에서 재미있는 점은 또한 심리적 지지선이나 저항선이 붕괴된 뒤 진정한 천정과 바닥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지선이나 저항선은 전고점과 전저점 근처에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투자자들의 심리 때문에 정수 지수가 심리적으로 지지선이나 저항선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 J. 머피의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참조)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1000포인트, 500포인트, 2000포인트 등 정수 지수의 돌파 혹은 붕괴에 의해 심리가 더 흥분되거나 침체되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의 증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심리를 역이용하여 정수 지수대를 돌파 혹은 붕괴된 후 생기는 반전이 대천정과 진바닥을 형성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불트랩이나 베어트랩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1992년 하반기 사회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7월에 신행주대교가 붕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대우 김우중 회장의 신당창당설이 나돌면서 증시는 500포인트를 붕괴시키며 투자자들의 마지막 희망까지도 날려버립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가 바닥이 임박한 순간이었습니다. 

 

정부는 바닥을 모르고 빠지는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8월 24일 부양책을 내놓게 되는데 이를 두고 '빨리 사(8.24) 조치'라고 부릅니다. 빨리 사 조치에 포함된 것은 시중 금리의 하향 안정화 방안, 기관의 주식매수 방안, 투신사 자사주 펀드 허용, POSCO와 한국전력에 대한 외국인 매수 허용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기관 주식 매수 방안이 골치를 때리는데 이를 보면 정부가 얼마나 강한 세력인지를 알 수가 있게 됩니다.

재무부는 은행에게는 신탁계정 월별 수탁고 순증가분의 25%로 주식을 사라고 지시했고, 보험사에게는 보험수지차액의 20%로 주식을 사라고 지시했습니다. 한편 연기금에게는 1년간 1조원 이상의 돈을 증시에 퍼부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지난 해 말 이명박 정부가 연기금을 동원해 저점 사수를 한 것과 유사하지여?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이 없게도 기관은 주가가 안정될 때까지는 순매수만을 유지하도록 강요받았는데 당국에서는 산하 기관의 주식매매 동향을 매일 체크하고 감독하여 재무부에 보고했 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분명 자유시장에서는 일어날 수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조치였지만 그 효과는 증시에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주봉 차트를 보면 시세는 456포인트를 찍고 장대 양봉을 하나 만들게 되는데 이 양봉이 빨리 사 조치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증시는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저항선을 돌파하며 올라갔습니다. 동시에 금리의 급격한 하락이 일어났는데 시중금리를 기준으로 보면 1년 동안 20%에서 12%까지 무려 8%나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증시에 유동성이 풀리면서 고객예탁금은 3조원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외국인들이 일찌기부터 군침 흘리고 있었던 포스코와 한국전력에 대해 매수가 허용되자 저PER주에서 크게 해먹고 어디로 들어갈까 고민하던 외국인들은 공격적으로 이들을 매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억지스런 조치로 증시는 부양되기 시작했지만 실물 경기는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금융장세로 보는 것은 상당히 적절합니다.

 

금융장세의 끝자락에서 나타난 조정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촉발되었는데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93년 8월 12일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 실시된 금융실명제입니다. 시장은 이에 크게 출렁였지만 곧 이것이 장기적으로 악재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세는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실적 장세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후 금리는 93년 8월을 기점으로 상승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기업 실적의 호전을 바탕으로 상승을 이어갔는데 이때의 주도주들로는 삼미특수강, 한보철강, 대우통신 등의 저가대형주들이었습니다. 위 차트에서 실적 장세의 첫번째 상승파동이 바로 저가 대형주 장세에 해당합니다. 이는 우라카미 쿠니오가 실적장세의 전반부는 소재산업에 속하는 저가대형주들이 선도한다라는 지적과 일치하는 결과였습니다. 소재산업은 경기가 좋아지면 그 수요가 광범위하게 증가하므로 경기호전에 가장 먼저 반응하게 됩니다.

 

이 당시 금융장세에서 실적장세로의 이동을 가능케 했던 가장 핵심적인 요인에는 '신(新) 3저(低)'로 불리는 엔고(달러 약세), 글로벌 금리 하락, 유가하락 요인과 '반도체 특수'로 불리는 기업실적 호전 요인이 있습니다. 각각이 왜 실적 장세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는지를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93년 상반기, 미국 클린턴 정부는 1,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일본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엔고를 용인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자 엔화가치는 폭등세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큰 반사이익을 안겨 주었습니다.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던 자동차, 전자, 조선주들의 수출경쟁력이 크게 증가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엔고에 의해 우리 증시가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한편 2년 넘게 지속되어 온 경기불황을 타계하기 위해 1992년 선진국들은 일제히 금리 인하 공조체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결과 선진국 경제에 급격한 유동성 팽창이 일어나면서 소비가 증가할 여건이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이 또한 이들을 상대로 수출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에게는 큰 호재였던 것이지여.

 

마지막으로 이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 당 16달러 정도였는데 이는 이라크가 수출을 재개하면서 원유 공급이 늘어나고 냉전체제가 종결되면서 정치적 리스크 또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원유를 전적으로 대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우리나라는 여기에서도 원가 절감이라는 강력한 우군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3저 효과를 가장 톡톡히 본 업종은 뭐니뭐니 해도 반도체 업종인데 이는 4메가 D램의 최대 수요처인 미국 컴퓨터 업체들이 발주처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94년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1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때마침 D램 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점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실적 장세의 제2상승국면을 장식한 종목들은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를 포함한 블루칩(BLUE CHIP)이 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 기간 동안 40,000원에서 14만원까지 올라가는 폭등세를 보여주었습니다. POSCO는 93년 11월 3만원을 돌파한 후 9월 9만원까지 올랐습니다. 그 외에도 현대차, LG전자 등이 장세를 이끌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앞의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산주로 부각된 중소형 우량주들이 폭등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또한 우라카미 쿠니오의 '실적장세의 후반부는 가공산업에 속하는 종목들과 중소형 우량주들이 선도한다'라는 지적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반년 넘게 소강상태를 보이던 주가는 막판 불꽃을 발생시키게 되는데 이때는 개투들이 상투 근처에서 마구잡이로 주식을 사는 버블의 막바지 단계였지여. 장기간 소외되었던 종목들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종합주가지수는 1100포인트를 돌파하게 됩니다.

 

94년 11월, 1145포인트에서 꼭지를 친 증시는 역금융장세로 돌입하게 됩니다. 이때 대다수의 종목들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신고가를 경신하며 올라갔던 종목들이 있었으니 이는 삼성전자, 삼성화재, SK텔레콤, 현대차, POSCO 등의 초우량주들이었습니다.

 

초우량주들 마저도 상투를 치고 장기하락국면으로 접어들자 늘 그렇듯 잡주들의 장세가 나타납니다. 성장성을 무기로 대중들의 기대를 먹고 날아다닌 개별 테마주들은 늘 역실적 장세의 끝자락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다들 아시져? 모든 투자자들을 초토화시킨 IMF입니다.

 

우리는 우라카미 쿠니오의 장세 구분법이 실제 우리 증시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라카미 쿠니오의 장세구분법은 여전히 장세를 진단하는데 있어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이러한 구분법은 글의 초두에서도 밝혔듯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한계는 위에서도 밝혔듯 이 모델이 폐쇄 경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의 변동과 같은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두번째 한계는 이 모델이 경기순환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리한 독자라면 알아차렸겠지만 정부가 유동성을 푼다고 해서 반드시 산업자본이 이에 반응해 설비투자를 늘리는 것은 아니며 시중자금이 증시로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찌기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KEYNES)는 시중에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공급됨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침체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현상을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장세구분법이 탄생한 일본 증시에서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일본은 92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금리를 낮추어 제로 금리 시대를 열었으나 금융장세와 실적장세는 나타나지 않고 주가는 끊임없는 하락세를 보이며 오늘날 '잃어버린 10년'으로 지칭하는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일본 경제는 왜 공격적인 금리 하락에도 반응하지 않고 경기순환론의 모델에서 벗어나 버린 걸까여? 그 이유는 1980년대 후반의 일본 경제가 말 그대로 버블경제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1980년대에 끊임없이 경상수지 흑자를 누적해가며 세계 제일의 채권국이 되었고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JAPAN MONEY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일본의 자금은 전세계로 퍼져 뉴욕 맨해튼의 고층 빌딩을 사들이고 COLUMBIA PICTURES를 인수했습니다. 일본 열도 전체에서는 은행 대출을 바탕으로 한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났습니다. 은행 대출이 이토록 늘어난데는 정부의 저금리 기조로 예대 마진만으로는 은행 영업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행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남발하며 부동산 투기에 나섰던 것이지여. 증시에도 과잉 유동성이 몰리면서 버블을 양산해냈고 이때 증시에 들어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부동산에서 크게 재미를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업들 또한 증시로부터 자본을 조달받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 쌓인 이익잉여금으로 주식시장에서 재테크에 열중하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벌어졌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이러한 초대형 버블의 붕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아무리 금리를 낮춰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려 해도 이미 범람한 유동성에 익숙해 있던 일본 국민들에게는 씨알이 먹히지 않았는지도 모르지여.

 

우리는 다시 한번 교조주의를 경계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우라카미 쿠니오의 이론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우 유용하지만 분명한 한계 또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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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여러분도 익히 들어서 알고 계실 유명한 헤지펀드인 LONG TERM CAPITAL MANAGEMENT(이하 LTCM)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LTCM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LTCM의 파산에 초점을 맞추어 거대한 레버리지의 위험성에 대해 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LTCM의 스토리를 단순히 차익거래를 위주로 하던 한 헤지 펀드가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바람에 파산하면서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라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비록 LTCM은 파산하였으나 LTCM이 사용했던 다양한 투자기법이 어떻게 차후 많은 투자은행에게 전수되었으며, 여태까지도 헤지펀드의 기본적인 기법으로 이용되고 있는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글을 통해 선진 투자기법이란 어떠한 것이며,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민해보고, 글로벌 선도세력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6. LTCM의 역사와 차익거래 기법

 

LTCM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들이 주로 사용했던 전략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채권의 차익거래에 치중하는 헤지 펀드였습니다. 차익거래(ARBITRAGE)란 기본적으로 동일한 두 자산의 가격이 일시적으로 벌어질 때 고평가된 것을 매도하고 저평가된 것을 매수함으로써 그 차익을 이득으로 취하는 무위험 거래(RISK-FREE TRADE)입니다. 우리가 흔히 프로그램 매매라고 부르는 것이 이러한 차익거래에 포함이 되는데 대개 주가지수 선물과 KOSPI200의 베이시스가 벌어질 때 그 베이시스를 먹기 위해 행해지는 거래를 우리 증시에서는 프로그램 차익거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가 차익거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이만큼 큰 오해도 없을 것입니다.

 

시장에서 차익거래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과 LTCM이 한때 이러한 기법으로 엄청난 이익을 창출했다는 점은 시장에는 늘 비효율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금융기법에 대해 완전한 초보인 분들을 위해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라는 지역에서 개나타라는 자동차가 200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B라는 지역에서는 같은 개나타 자동차가 190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겁니다. 이때 똘똘이라는 녀석이 이러한 가격차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래서 똘똘이는 B 지역에서 자동차를 매수한 다음 A 지역에서 매도함으로써 100만원의 차익을 챙길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거래를 차익거래라고 합니다.

 

부동산 경매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몇 차례 유찰되어 헐값에 나온 부동산을 낙찰받아 더 높은 가격에 파는 차익거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이러한 공짜 수익의 기회가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기회가 있다면 똘똘이 같은 녀석이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공짜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여. 그래서 전통 금융 이론에서는 시장에는 이러한 차익거래의 기회가 존재할 수 없고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워낙 찰나적이라서 지속적인 수익의 기회로 활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효율적 시장 가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수많은 차익거래의 기회를 찾아다니며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시장은 상당히 효율적임에는 분명하지만 절대로 완전히 효율적이지는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가치투자기법 또한 결국 내재가치와 시장가치의 괴리가 언젠가는 좁혀질 것이라는 점에 베팅하는 모종의 차익거래임을 알고 계셨습니까? 가치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가치와 내재가치는 같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시장의 비효율성 때문에 이 둘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때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적정주가로 평가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통적인 가치투자의 핵심입니다.

 

만일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가치투자도 소용이 없고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종류의 적극적 투자가 소용이 없어집니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다른 사람보다 지속적으로 더 나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으므로 최선의 대안은 인덱스 펀드를 매수 후 영원히 보유하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개투들에게는 인덱스 펀드가 장기적으로 최선의 대안인 것은 맞습니다. 개투들의 대부분은 시장의 비효율성을 포착하는 능력이 없으며 도리어 그 비효율성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도 세력들은 시장이 비효율적인 상태에서 고무줄처럼 효율성으로 복귀하는 정상적인 구간에서는 수익을 얻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비효율성이 소멸되지 않고 지속되는 구간에서는 큰 손실을 입으며 그때부터는 스스로가 시장의 비효율성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되어 시장을 교란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LTCM의 파산도 정확히 이러한 케이스에 해당됩니다.

 

여러분은 더이상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흐르는 순간을 틈타 한건 해먹기 위해 불법 작전을 펼치는 구시대 스탈의 조막손 세력들을 머리에 떠올려서는 안됩니다. 오늘날의 진정한 선도세력은 대부분의 경우 비효율성이 아닌 효율성에 베팅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LTCM은 여전히 많은 헤지펀드들이 구사하고 있는 다양한 차익거래 기법의 원조입니다. 이러한 차익거래 기법의 예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고정 수익 차익거래(FIXED INCOME ARBITRAGE)

 

여기에 해당하는 차익거래로는 이자율 스왑 차익거래, 국채-회사채 금리 스프레드 차익거래장단 금리 스프레드 차익거래 등이 있습니다.

 

이자율 스왑 차익거래란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은행이 CD금리 + 1%의 변동금리로 예금을 받아 5%의 고정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은행은 CD금리가 상승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이를 헤지하기 위해 스왑 딜러를 찾아 5%의 고정금리를 주는 대신 CD금리 + 2%의 변동금리를 바꾸는 스왑 거래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은행은 CD금리 + 1%로 예금을 받아 CD금리 + 2%로 대출을 해주게 되어 1%의 금리를 무위험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멍청한 스왑 딜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여.

 

국채-회사채 스프레드 차익거래란 국채 금리와 회사채 금리가 지나치게 벌어졌을 때 이 둘이 결국은 수렴할 것에 베팅하는 차익거래입니다. 경기가 매우 혼란스러워서 시장이 비효율적인 상태에서 국채-회사채 금리 스프레드는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결국 종결되면서 스프레드가 축소될 것에 베팅하는 방법입니다.

 

장단 금리 스프레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채권의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졌을 때 이 차이가 좁혀질 것에 베팅하는 기법입니다.

 

2) 짝짓기 차익거래(PAIRS TRADING)

 

짝짓기 차익거래란 본질적으로 같거나 유사한 두 종목 간의 가격 괴리가 발생할 때 그 괴리가 해소될 것에 베팅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보통주보다 삼성전자 우선주가 더 크게 올랐을 때, 이 격차가 언젠가는 좁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삼성전자 우선주를 공매도하고 삼성전자 보통주를 매수하면 됩니다.

이러한 짝짓기 롱숏 전략은 동일 업종의 유사한 종목들 사이에서도 행해질 수 있습니다.

 

3) 통계적 차익거래(STATISTICAL ARBITRAGE)

 

통계적 차익거래란 본질적으로 짝짓기 차익거래에서 유래한 방법으로 특정한 변수를 기준으로 하여 종목 포트폴리오를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변동성이 과도하게 증가한 종목군과 감소한 종목군을 서로 다른 두 개의 포트폴리오로 구성하여 변동성이 큰 포트폴리오는 매도하고 작은 포트폴리오는 매수하는 식입니다. 결국 변동성은 평균 회귀 현상에 의해 두 포트폴리오 모두 비슷해질 것이라는 점에 베팅하는 것이지여. 통계적 차익거래는 그 본질상 계산을 요하기 때문에 컴퓨터에 의한 분석 없이는 사용되기 어렵습니다. 하기사 오늘날 대부분의 차익거래는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지여.

 

LTCM의 설립자는 과거 살로먼 브라더스(SALOMON BROTHERS)의 부사장이자 채권 트레이딩 팀장이었던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입니다. 그는 하급자였던 폴 모저(PAUL MOZER)가 재무부 당국에 허위 보고를 한 사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오랜 기간 일했던 살로먼 브라더스로부터 해고되면서 헤지 펀드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본래 함께 일했던 채권 트레이딩 부서를 살로먼 브라더스로부터 빼내고 1997년 블랙-숄즈 옵숀 가격 결정 모델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와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FRB 부의장 데이비드 뮬린스(DAVID MULLINS) 등을 영입하게 되지여.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된 드림팀은 국제적인 금융기관과 큰손들로부터 12억 5,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아 1994년 2월 출범하게 됩니다.

 

LTCM는 1995년에는 59%, 1996년에는 57%의 엄청난 수익율을 올리며 출범 이후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수학적 모델과 이론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25:1에 달하는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과 1조 2청 5백억 달러에 달하는 파생상품 포지션을 유지했습니다. 차익거래란 본래 아주 작은 무위험 수익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과도한 레버리지에 의존했던 것입니다.

 

LTCM은 1997년에도 전년도의 수익율에는 못 미치지만 원금의 크기를 고려하면 여전히 엄청난 25%의 수익율을 기록합니다. 이쯤 되면 그들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신화를 개척했다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신에서부터 조금씩 싹트고 있었습니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각종 채권의 금리 스프레드가 축소하기는 커녕 더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일본과 유럽 국채를 팔아 미국 국채를 사러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진 콜을 당하게 되었고 증거금을 내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다른 차익거래 포지션들을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면서 청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펀드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1억 8,50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LTCM에 결정타를 날렸던 것은 1997년 여름에 구성한 ROYAL DUTCH SHELL이라는 이중상장기업(DUAL LISTED COMPANY)에 대한 차익거래 포지션입니다. 이중상장기업이란 결국 서로 다른 주주그룹을 가지고 있는 동일한 기업이므로 그 주가가 종지에 수렴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포지션이 결국 수익을 내주기 이전에 청산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ROTAL DUTCH SHELL의 프리미엄이 22%나 증가한 것으로 보아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LTCM은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보유한 엄청난 포지션 또한 지급 불가능 사태에 빠지게 되어 LTCM에 투자한 금융권의 연쇄 파산의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골드만 삭스, AIG, 버크셔 해더웨이가 LTCM을 2억 5천만 달러에 매수하고 3억 7,500만 달러를 주입하여 골드만 삭스의 한 부서로 두기로 제안하지만 LTCM은 이를 거절합니다. 결국 뉴욕 연방 준비 은행이 나서서 다양한 투자은행들로부터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사태를 종료하게 됩니다.

 

LTCM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을까여?

 

모두 말하듯 과도한 레버리지가 한 가지 요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와 같이 엄청난 레버리지를 겁없이 차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시장이 결국은 효율성으로 회귀한다는 지나친 확신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전통 금융 이론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주로 학계의 천재들로 구성된 LTCM의 트레이딩 팀은 때로 시장은 효율성으로부터 상당히 오랜 기간 멀어질 수도 있으며, 이러한 비효율성 및 시장 불안정성은 예측치 못했던 사건(이를테면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에 의해 촉발될 수도 있음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LTCM은 분명 베어링 은행을 파산으로 몰고 간 닉 리슨의 사건이나 그 외 유사한 금융 사건과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LTCM의 투기는 철저한 계산 하에 진행되었고 3년 이상 눈부실만한 실적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이론과 계산을 지나치게 과신함으로써 가격간의 괴리에만 신경을 썼지 자신들의 생각과 현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괴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라면 어떠한 기법을 통해 연속적인 수익을 달성하게 된 후 그 기법을 점차 과신하게 되고 거만해지면서 과도한 베팅을 감행하다가 큰 손실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 또한 이러한 순간을 수많이 경험해봤습니다.

 

시장이란, 완전히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실체가 변해버리는 이상한 생명체입니다.

 

시장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비효율적인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비효율적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적어도 현재까지의 역사를 보면) LTCM의 투자철학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기간이 상당히 길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으며 바로 이러한 점이 과도한 레버리지에 의해 그들을 추락시켰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용했던 전략들은 오늘날 이용되고 있는 다양한 차익거래 전략의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비록 실패하였으나 이론적으로나 실제 투자세계에서나 많은 기여를 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금융 세계는 점차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도 개투들은 여전히 외국인이 이 종목을 샀으니 올라갈 것이라는 등의 너무나도 순진하고 단순한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시장은 더 이상 그렇게 천진난만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없습니다.

 

선도세력은 급격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바닥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며 상대적으로 도태되고 있는 것은 영원한 봉인 개투들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개투들이 이러한 점을 조금이나마 인식을 하고 실력을 쌓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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